스킵네비게이션

본문으로 바로가기 대메뉴로 바로가기 카피라이트 바로가기



2018년 누적 매출액 43,554,502,024원 | 11월 매출액 2,829,419,255원 | 11월 15일 매출액 177,702,826원 |
ONLINE 30,212,157,325원
OFFLINE 13,172,883,099원
ONLINE 1,972,587,675원
OFFLINE 856,831,580원
ONLINE 133,494,106원
OFFLINE 44,208,720원
  • kantukan remind and companion®


사진은 머무른다
오늘도 무사히
나는 왜인지 표 안나는 검정이 되었네

어제 밤에 꿈을 꾸었다. 역시 잠이 길어서 꿈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길다란 사무실 복도를 지나는데 신입사원 시절의 내 모습부터 1년씩 꼬박 16명의 내가 칸막이 1인실을 사용하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내가 걷는 길은 어둡고, 차가웠다. 마지막 방에 다다를 때즈음 되어,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 순간 기상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무시하고, 계속 잠을 잔다.
마지막 방의 내 얼굴을 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마지막 방에 있는 내 얼굴에는 7:00 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나는 왜인지 표 안나는 검정이 된듯한 기분이 들어 얼른 일어났다.

우리는 형형색색의 시간을 물들이고 있는 바탕색 검정을 기억한다. 그것은 깊고, 나락같아서 기억나지 않는 꿈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불빛 한 줄기 간절한 현실의 복도로 인도하기도 한다. 검정이 되었을때, 비로소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게 된다. Z208.Black
사람의 뭍으로 오라

네이버에 갑니다. 페이스북에 갑니다. 카카오톡 알람이 울립니다. 세일 문자가 옵니다. 11번가에 갑니다. 쿠팡에 갑니다. 휴대폰이 뜨겁습니다. 배터리가 딸랑딸랑 합니다. 샤오미 보조배터리에 휴대폰을 연결합니다. G메일을 열어 봅니다. 메일이 너무 많아 닫습니다. 네이버 메일을 열어 봅니다. 같은 제목의 메일들이 보입니다. 070 전화가 울립니다. 받지 않습니다. 친구 전화가 옵니다. 1분 정도 통화한 뒤, 나중에 전화하자며 끊습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가장자리에 섭니다.
철컥,
이마트 피코크 김치찜을 꺼내 전자렌지를 돌립니다. 햇반을 꺼내 식탁에 놓습니다. 숟가락을 물에 헹궈 식탁 위에 놓습니다. POOQ 앱을 실행합니다.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밥을 한숟갈 뜹니다.
잠자리에 눕습니다.

꿈을 꿉니다. 길다란 사무실 복도를 지나는데 신입사원 시절의 내 모습부터 1년씩 꼬박 16명의 내가 칸막이 1인실을 사용하며,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복도는 어둡습니다. 마지막 방에 다다를 때즈음 되어,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 순간 기상 알람이 울립니다. 알람을 무시하고, 계속 잠을 잡니다. 마지막 방의 내 얼굴을 봅니다. 마지막 방에 있는 내 얼굴에는 7:00 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왜인지 표 안나는 검정이 된듯한 기분이 들어 얼른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육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위대한 계츠비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운수 좋은 날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인생극장
16:9 파노라믹 출근길

잃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지켜온 것들을 어느 하나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다. 먼지 쌓인 물건들을 집 안에 방치하고, 묵은 감정들을 내면에 간직한다. 묵어서 나는 쉰내에 모른 채 반응하고 태연하게 살아간다. 그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행동의 수수께끼다. 방 청소와 환기를 주기적으로 하는 우리는, 정작 내가 조성한 생활 주변의 묵은 것들은 치우지 않고 비슷한 사람들과 줄을 맞춰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맞춰 가는 줄은 어디로 향하나. 무엇도 잃지 못하고 어깨 위에, 발 밑에 질질 끌고 가는 그 모든 것들, 옆 사람과 줄을 서 있으면 그것들은 하나의 커다란 산맥이 된다. 우리는 해안가로 간다. 우리는 줄을 맞추어 해안가로 가다가, 우리가 짊어진 짐의 높이와 지탱하는 다리 길이의 비가 3:4를 조금 넘어가는 순간 스러지겠지. 파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스러지려 살아가는 것인가 생각해본다. 누구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지만, 누구나 스러지기 위해 살아가는 모순.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서점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럴 일은 없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그 책의 후작을 청탁한다면, “스러지는 삶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쓰고 싶다. 버티는 삶의 목적은 스러지는 삶이라 생각하기에.